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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은 척해왔을 뿐이다

by 강아지톡톡-아지톡 2024.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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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알고 있었다. 그저 외롭지 않은 척해왔을 뿐이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돈 벌면서, 수다 떨면서, 때로는 술까지 먹으면서 잠시 잊었을 뿐이다. 심지어 이보다 더한 것도 하면서 살아왔다. 외롭지 않으려고 사랑하지 않는데도 참고 만났고, 외롭지 않으려고 좋아하지 않는데도 아부를 했고, 외롭지 않으려고 열정이 없는데도 회사에 눌러 붙어왔다. 그러다 막상 등떠물려 은퇴하면 오는 외로움은...

그럼에도 이제야 외로움이 실감되는 것은 첫째, 반평생을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이제는 노력할 힘이 바닥이어서 그럴 것이다. 외부적으로도 노력할 구실과 압박, 의무가 조금씩 없어지고 노력하라고 누군가 깔아놓은 멍석도 서서히 말아지고 있다. 그래서 모든 방어기제들이 무너지면서 우리의 민낯, 외로움이 크게 자각되는 것뿐이다.

둘째, 이렇듯 차 떼고 포 떼고 껍데기를 하나씩 벗어가면서 실존적 감정에 가까워지고 있어서일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외로운 존재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솔직히 인정하면 어떨까?

키사 고타미의 이야기

불교 관련 매체를 통해 많이 알려졌던 키사 고타미의 이야기가 있다. 키사 고타미라는 여인이 아이를 잃고 극한의 고통에 빠졌다. 그녀는 아이를 살릴 약을 찾으러 미친 듯이 절규하며 돌아다녔고, 심지어 아이의 시체가 썩기 시작했지만 시체를 내려놓지 않으려 했다. 마침내 부처님께 애원하자 부처님은 아이를 살릴 약을 줄 테니 겨자씨 한 줌을 가져오되, 반드시 사랑하는 이를 한 명도 잃은 적이 없는 집에서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가볼 수 있는 모든 집의 문을 두드렸으나 그런 집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슬픔에 짓눌려 몸부림치는 사람이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 사람 모두 묵묵히 슬픔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비로소 그녀의 광기는 멈춰졌다.

이 얘기를 우리 얘기로 바꾸어본다면, 외롭지 않은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집은 찾을 수 없다. 모두 묵묵히 외로움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수용하는 연습을 많이 하라고 했다. 그러니 일단 수용 먼저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도록 하자. 당신도 같이 해보시라.

“네. 외롭습니다. 외롭답니다.” 

인생은 늘 그렇습니다.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지 않는가? 그깟 외로움이 뭐라고,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꽁꽁 싸매서 들키지 않으려고 생난리를 치며 살아왔단 말인가. 그저 받아들기만 하면 되었을 것을. 막말로, 외로운 게 병도 아닌데 말이다. 설사 병이라 쳐도 말이다. 보자기에 싸 놓고 일단 바라보자.

나이 듦과 외로움의 수용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기에 혼자가 아닌 삶을 원한다. 그러나 그것을 수용하고,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외로움을 숨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큰 치유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보지 못한 옛친구들이 궁금하고 보고싶어지나 보다.

이제부터는 외로움을 인정하고, 그것을 함께 나누는 법을 배워보자. 외롭다고 해서 그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모두가 느끼는 감정이기에, 이를 통해 더 큰 연결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답게 나이들기로 했다'-를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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